보통 사람이라면 브라만
에게 ‘이 무슨 무례한’, ‘그건 오해다’, ‘그러는 당신은 어떻고?’라는 식으로 대꾸하고 싶어질 상황이지요. | 사람들 사이의 다툼에는 항상 ‘만’과 ‘만의 부딪침이 있습니다
다. 여기에는 ‘자기 생각이 반드시 옳다는 생각이 있지요. 그
생각을 밀어붙여 내가 옳다고 확인하려는 것이 바로 언쟁하는 사람들의 심리입니다.
그러나 붓다는 다른 사고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우선 옳음’
의 기준은 저마다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옳다는 판단이 그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옳은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주장을 부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내가 옳다고, 알겠어?’라고 억지로 설득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에게는 그것이 옳은 것이군요.’라고 그저 이해할 뿐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때도 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
다지만 이는 뒤에서 다룰 상대방과의 관계 방식
이 모 제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우선 ‘반응하지 아니
여기서는 우선 ‘반응하지 않는 마음 만들
기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애초에 사람은 각각 다른 ‘뇌’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사고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상대방도 자
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내심 기대하는 때도 있는데,
이런 기대나 선입견은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내가 옳다는 마음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심인 ‘만’도 항상 작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의견과 부딪치게 되면 자
기자신 이 부정당한 기분이 들어 분노로 반응하게 됩니다. 그러
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일수록 화를 잘 내는 경향이 있지요.
이런 정신 상태는 망상’과 ‘만’이라는 비합리적 발상에 사로
잡힌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화해서 올바르게 이해해봅시다. 바로 상대방의 반응과 나의 반응은 전혀 별개라는 것을 말이지요.
‘상대방과 나의 반응을 구별해서 생각한다.’, ‘상대방의 반응은
상대방에게 맡긴다. 이것이 바로 인간관계로 고민하지 않기 위
한 기본적인 마음가짐입내다.
고민을 반으로 줄이는 방법
상대방의 반응을 상대방에게 맡긴다면 고민은 반으로 죽이
니다. 그런 다음 반응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면 감정으로 고민할
일도 없어지겠지요.
그렇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무심코 반응하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울컥하면서 반격하고 싶어
지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든 반응하지 않는 요령은 없을
까요?
이때는 마음 반쪽을 앞, 나머지 반쪽을 뒤로 향하도록 나누어 사용하는 방법을 권하고 싶습니다.
우선 마음을 앞과 뒤로 나눠보세요. 눈을 감고 앞쪽을 향하는 마음’과 ‘내 마음의 안쪽을 살피는 마음을 떠올려봅니다.
앞을 바라보는 마음은 말 그대로 상대방을 보는 데 사용합니다. 반응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인다는 처지에 서보세요. 상대방
과 마주했을 때,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는지만이 문제이니
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알겠다면 알겠다고, 모르겠다면 유심히
듣거나 지금 당장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내다. ‘저 사람이 하는 말은 전혀 모르겠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같은 언어로 말하는 이상, 적어도 언어 적은
오는 무슨 뜻인지 이
1. 뜨인 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호랑이 눈 이해가 다
않는 이유가 내가 이
. 이유가 내가 이해를 거부하고 있는데 있지는 아프기
을 내가 옳다는 생각, 상대방이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
너희 기대나 요구, 그러고 보니 전에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는 과
거에 대한 망상이 머릿속에 소용돌이치면서 상대방을 있는 그
대로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알고 싶지도 않다!’라는 생각이 드는 상대방도 있을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이라고 해도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일하다.
보면 나와 잘 맞지 않는 상사를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런 상대방일수록 냉정함을 유지하고 반응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어떤 뜻인지 알겠습니다”, “어떻게 하고 싶으신 건가요.”라 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파악해야 합니다.
이때 뒤쪽을 향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반응을 살펴봅니다. 분
노를 느끼고 있는지, 과거를 되돌아보고 있지는 않은지, 긴장할
거나 상대방에 대한 의심과 망상이 솟아나고 있지는 않은지늘
살펴보는 것이지요.
그런 반응이 있는 것 자체는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명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반드시 뒤쪽을 향한 마음은 자신의 마음 안쪽
을 들여다보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이
‘선’의 세계에는 ‘부동심’이라고 불리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는 스스로 마음을 살피고 지켜보는 노력을 거듭해야 비로소 오
를 수 있는 경지입니다. 애초에 마음은 마지막까지 주
마지막까지, 즉 죽음에
이르거나 수행의 최종 목표인 깨달음의 경지에 오를 때기
기 없이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의이지요. 그렇게 계속 움직이는 마음을 지켜보며 어떤 상태인지
제대로 알아차리고 그 이상의 반응을 멈추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부동심의 핵심입니다.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상대방에 대한 반응에 단번에 떠밀려
내려가고 맙니다. 그러고는 분노, 긴장, 불안, 공포, 의심, 기억,
망상, 슬픔과 같은 번뇌의 파도에 휩쓸리게 되는 것이지요. 울 거 나 남을 원망하고, 너무해’, ‘까불지 마’, ‘아, 너무 분하다.’ 등 우
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반응의 폭풍에 휘말리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불쾌한 감정이 솟아나지 않도록, 될 수 있으면 반응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을 명심하면 점차 부동심, 즉 반응하지 않는 마음이 자라나게 됩니다.
지지 않으려
애쓰지 않는다.
예전에 시내의 어떤 공원에서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급식 봉사활동을 돕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아침, 봉사활동을 함께하는 직원들이 심각한 표정의
노 저에게 달려와서 말해
다려와서 말했습니다. 행패를 부리는 남자가 있습니다
다!” 저는 서둘러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a 외성이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고 있는 모습을 200여 명
이나 되는 노숙자들이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
는 상·하의 모두 새카만 운동복을 입고 있었는데 오른쪽 소매에
는 빨간색으로 붓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검게 그은 피부에,
스포츠머리 언저리에는 짧게 들여 깎은 자국이 있었습니다. 첫
눈에 보기에도 그쪽 계통의 사람이라고 알아볼 만한 모습 이어
습니다.